파주에 깃든 생명(53) 무한의 사랑, 엄마마음
수정 : 2018-07-10 16:31:24
무한의 사랑, 엄마 마음
엄마와 장 단지
곡; 서창원
노래; 이유진
항아리에 된장 간장이
수월찮게 남았는데
엄마는 올 들어 유난히
콩 농사에 지성이다
장은 오래 묵힐수록
맑은 단맛이 나오는 거야
내년을 모르니
할 수 있을 때까지 해놔야지
나 없을 때도
꺼내 먹을 수 있게
눈물이 핑 돌며
항아리가 숨을 쉰다
허리가 울룩불룩
엄마의 모양새다
주름진 여든의
풍상이 우러나와
맑아질수록 깊어가는
엄마의 장 단지
해와 달과 구름이 흐르는
텃밭에 상치며 치커리, 오이, 고추가 한창이다. 물만 줘도 싱싱하게 자라나는 그네들을 갓 따서 입 안 가득 상치쌈을 먹을 때면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져서 감사한 마음이 절로 우러나온다. 나도 따라서 식물성인간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. 쌈을 먹을 때면 꼭 필요한 된장, 그래서 난 또 어김없이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난다. 엄마가 가신지 4년이 지났는데 난 아직도 엄마의 된장, 고추장을 떠먹고 있다. 돌아가시던 해, 장독에 장이 꽤나 남았는데도 장을 담그시던 엄마와 나눈 이야기가 위의 노랫말이다. 대학생 딸을 두고 있는 나도 한 엄마인데 ‘엄마’라는 존재의 그 무한한 사랑의 깊이를 아직도 가늠하기가 어렵다.
엄마’라는 존재들은 사람이나 곤충이나 식물이나 그 어느 세계에서라도 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. 내 자식이 건강하게 잘 자라나 주어진 생명을 다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….
수노랑나비 알
애호랑나비 알
나비 엄마들도 마찬가지이다. 나비들은 짝짓기가 끝나고 알을 낳고 나면 성충으로서의 할 일이 다 끝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비들은 어른 상태의 시기가 그리 길지 않다. 내가 알고 있는 나비들 중에 나비알이 깨어나 애벌레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는 나비는 없는 것으로 안다. 그래서 나비 엄마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비알들이 깨어나자마자 엄마가 없어도 먹이를 바로 먹을 수 있게 각자의 먹이식물에 알을 붙여 놓는 것이다. 천적들의 눈에 띄지 않게 최대한 안전한 곳을 찾아 엄마들은 날아다닌다. 수노랑나비가 풍게나무 잎 뒤에 알들을, 애호랑나비가 족도리풀 잎 뒤에 알을 붙여 놓은 모습이다.
수노랑나비
1령 애벌레
애벌레들이 알에서 깨어나 그네들의 먹이를 잘 뜯어먹은 모습들이다. 그들 곁에는 이미 엄마가 없다. 엄마가 자리잡아준 먹이식물이 있을 뿐이다. 그러나 그 자리엔 그 무엇도 대신해줄 수 없는 엄마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. 먹이식물에 알을 붙이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?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다하며 앞으로 자식들을 계속 지켜볼 수는 없지만 그녀의 자식들이 한 존재로서의 삶을 잘 감당해내리라는 깊은 믿음과 염원이 함께 했을 터이다. 그 삶의 과정에서 천적에게 당하기도 하고, 나름의 고통과 험난한 여정들이 함께 하겠지만 살아남은 자식들은 또다시 부모의 삶을 이어가고, 또 이어가고 할 것이다.
그들의 생태를 바라보며 나는 또다시 ‘엄마인 나’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. 이미 성인이 된 자식이 못미더워 전전긍긍하며 내 울타리에 자꾸만 가둬들이려는 모습이 과연 지혜로운 것인지….
산철쭉의 암술과 씨방
할머니와 손녀의 손
산철쭉의 꽃이 졌는데도 암술은 아직껏 그네의 씨방에서 떨어져나가질 않고 있다. 마지막 한 방울의 힘이라도 그녀의 소중한 씨앗에게 남김없이 주고 가려는 안간힘인 것이다.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손녀의 여리고 뽀얀 손을 감싸 주고 있다. 나를 키워낸 저 손이 자식의 자식에게까지도 사랑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. 우리는 이렇게 끝도 없이 사랑으로, 사랑으로 이어져 가는 것이리라.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나의 가장 귀한 보물에게 이상한 횡포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, 기쁨과 더불어 고통도 함께 그들의 몫일 터인데 그릇된 사랑으로 오히려 자식을 더 나약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. 나의 엄마가 내게 그랬듯, 내가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가 내 아이에게 가장 큰 교육이려니 생각하며 그저 가만히 지켜보며 굳게 믿어 주는 마음이 최선의 사랑이리라.
정덕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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